정신건강이야기
[정신건강칼럼 12월] 전문가의 오류와 예방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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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오류와 예방법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
전문가의 오류와 예방법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얼떨결에 받아들이고는 금방 후회했다. 평소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다 나 스스로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비전문가의 단상 정도로 가볍게 읽어 주면 좋겠다. 최근 모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났다.
‘가족이 말기 환자에게 연명의료 중단이나 완화의료 문제를 꺼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안젤로 블란데스 교수는 “그래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원하지 않는 심폐소생술과 기도 삽관은 ‘의료 과오’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거의 한 면을 할애하여 연명치료 전문가로 안젤로 블란데스 교수를 소개하면서 실린 글이다. 여러분이 나처럼 연명치료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면 이 기사를 읽고 연명치료 중단을 찬성하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지금 연명치료 중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문을 포함한 대부분의 미디어가 이런 식으로 소위 ‘전문가’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사들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전문가가 p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p이다.>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박학다식하기보다는 특정 주제를 깊게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전문가가 비전문가보다 답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전문가는 다양한 답을 너무 많이 알고 있거나 답이 아예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과 의사이지만 사람들의 정신이나 심리를 두루 안다고 감히 주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정신이란 한 두가지 이론으로 일반화하기에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방송 인터뷰에 나와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쾌도난마, 명쾌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을 보면 감탄과 한숨이 동시에 나온다. 그래서인지 나는 정신병이 왜 생기냐는 질문에도 답하기 어렵고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심리 상태가 정상이냐는 질문에는 더 답하기가 어렵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그가 그 분야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과연 전문가들은 진실을 말하는가? 사람들은 설마 전문가란 사람들이 자신의 평판을 해칠 짓을 하겠냐며 그들의 말을 신뢰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문가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전문가들일수록 거짓말, 혹은 거짓말은 아니라도 어떤 경우에는 맞고 어떤 경우에는 틀린 소위 절반의 거짓말을 스스럼 없이 잘 하는 것 같다.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라는 제목의 책에서 저자인 데이비드 프리드만은 비공식적 전문가라고 부르는 대중적 전문가뿐만 아니라 실제 전문가들도 평판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해 편견과 부패, 게으름, 혹은 무능함을 이유로 대중의 입맛에는 맞지만 근거가 부족하거나 아예 엉터리같은 말들을 한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믿던 좋은 시절이 있었다. 권위가 힘이 있던 시대이다. 권위는 저물었지만 의사의 말이라면 넙죽 믿어주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식의 단순 전달자 역할만 하는 전문가의 시대는 종언을 고한 지 오래다. 요즘은 교수가 강의를 하면 학생들이 즉석에서 사실인지 인터넷을 뒤져 본다고 한다. 전문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이 시대.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개탄하고 제발 전문가의 말을 믿어 달라고 소리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전문가가 하는 말을 믿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전문가라서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주장에 대한 적절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 안에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할 때만 전문가라고 주장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주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정신과 저널 클럽에서 1950-60년대 Nature 등에 실린 논문을 전공의가 발표토록 한 적이 있다. 간단히 결론을 이야기하면 그 논문 내용 중에 지금도 사실이라고 인정 할 수 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엄밀한 방법론에 근거한 확실한 결과라고 해서 그것이 50년 뒤에도 계속 사실로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신문을 논문 읽듯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나는 전문가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그런 줄 알면서 신문을 읽을 것이다. 평범한 독자로서 나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전문가로서 세상에 말할 때는 조금 더 엄격해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떤 기자들은 전문가들의 그렇고 그런 말에 너무 실망해서인지 <전문가가 p 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p이거나 말거나> 혹은 <p이거나 말거나, 전문가가 p 라고 말했다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가 진정 전문가이고 세상을 호도하고 싶지 않다면 모르는 질문에는 모른다고 하자. 그래도 대답을 해야 한다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답을 주려고 노력하자. 능력이 부족해서 틀리는 것은 허물이 적지 않을까 희망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