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이야기
[정신건강칼럼 7월 : 정신치료자의 면담에 앞선 마음의 자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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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치료자의 면담에 앞선 마음의 자세: 선수정심 (先須靜心)이글은 필자가 작성중인 한국융연구원 디플롬 논문의 내용 중 일부를 포함하고 있음.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신용욱
선수정심(先須靜心): ‘먼저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한다.’는 이 말은 조선중기 도인이었던 북창 정염 선생이 지은, 오늘날로 치면 명상 수련법 입문서에 해당하는 <용호비결 龍虎秘訣>에 나오는 구절이다. 북창 선생은 명상을 하려면 먼저 반드시 마음을 고요히 하라 하였다. 사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필요한 것은 명상 뿐이 아닐 것이다.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오르기 전의 연주가나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려는 순간에도 고요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태극권, 요가나 검도, 복싱과 같은 운동에서 호흡을 강조하는 이유도 호흡에 집중하여 잡다한 생각들로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바이오피드백이라는 기법은 호흡과 감각을 이용해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의 불안한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바일폰을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홍수에 둘러 쌓인 현대 사회에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민족은 많은 전란을 통한 자료의 분실도 한 이유이지만 유구한 시간동안 한자 문화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 교육의 부재로 인하여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자료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과거의 전통과 거의 단절되어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비교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조상들이 남긴 글귀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어원학적인 접근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러면 선수정심先須靜心이라는 말의 요지인 정靜이 가지고 있는 뜻을 어원학적인 면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보면 정靜은 ‘단청丹靑을 잘 살피는 것(明審)’이라 했다. 시라카와 시즈카는 정靜은 靑(푸를 청)과 爭(다툴 쟁)으로 이루어져 있는 회의자로 청靑은 단청丹靑이고 쟁爭은 쟁기를 손으로 쥐고 있는 형상으로 이는 봄에 밭을 갈기 전 쟁기(?)에 단청을 칠하는 제의와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시경 대아旣醉 편에 ‘제사에 쓸 곡식이 정결하다’는 의미인 변두정가?豆靜嘉라는 말에 정靜과 함께 가嘉라는 글자가 쓰이는데 가嘉 또한 쟁기(??)를 두고 북을 치고(鼓) 기원(祝禱)를 하여 액을 제거(?)하는 의미의 어원을 가지고 있어 정靜과 가嘉 두 글자는 농경문화의 의례를 뜻하는 서로 비슷한 말이라 하였다. 즉 정靜 이란 글자에는 종교적 의식을 행하고 조심스럽게 살핀다는 뜻이 있다.
글자의 어원에서 보듯이 정靜이라는 단어에는 종교적 제의와 조심스럽게 살핀다는 함의가 있다. 꼭 기도를 하지 않더라도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앉아 있으면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종교인이 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의 종교란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종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융(C.G.Jung)이 말한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지칭하는 렐리기오Religio를 말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서양의 Religion이라는 단어의 기원이 되는 라틴어 렐리기오Religio에는 정靜과 유사한 의미가 있다. 렐리기오는 ‘다시 모은다’, ‘다시 읽는다’, 혹은 ‘다시 살핀다’는 뜻의 re-legere 에서 왔다는 설과 ‘(신과) 다시 묶는다’ 혹은 ‘다시 연결한다’는 뜻의 re-ligare 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1]. 세일러(Benson Saler)는 렐리기오라는 말은 로마시대 사람들이,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느끼는 경외심, 두려움, 불안이나 의심과 같은 감정(scruple)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2]. 융도 렐리기오는 미지의 위험이나 존재에 대해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것이라 하였다[3].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정심靜心에서의 마음이 고요하다는 것이 마냥 마음이 편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심靜心은 고요하나 조심스럽게 살피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가 내담자를 마주할 때 이런 정심靜心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내담자의 감정을 주로 다루게 되는 정신치료의 현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돌이켜보건데 입원한 환자나 외래를 내원한 내담자들이 면담 후에 문제가 생겼던 경우들은 대부분 조급한 치료자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모든 급한 것은 악마로부터 왔다(Omnis festination ex parte diabolic est)는 서양의 속담처럼 많은 실수가 급한 마음에서 생긴다. 그것이 선의건 아니건 급한 마음에 나온 치료자의 말은 환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마음의 상처를 주어 결국 치료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고요하고 조심스러운 정심靜心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 대화를 나눌 때 말하는 내용의 맥락과 그말이 영향을 미칠 전체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많은 환자들은 마음의 갈등을 가지고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온다. 정신과 의사의 면담은 환자의 마음에 맺힌 실타래를 푸는 것과 같고 이 실타래는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자른 것처럼 한번에는 해결할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실을 물에 불려 만날 때마다 조금씩 매듭을 느슨하게 하는 긴 작업이 필요할 때가 많다. 얼핏 보아 소소해 보이는 갈등이라도 면담 중에 급하게 풀려고 하면 사단이 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요즘 이것을 깨달아서인지 시간에 쫗겨 급하게 회진을 도는 일은 가능하면 삼가하고 말도 가능하면 느리게 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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