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스토리
30년, 끝나지 않은 기도 - 국내 최초 생체 간이식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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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익숙한 수식어 뒤에는 당사자들의 절절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1994년 12월 8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생후 9개월 딸을 수술실로 보낸 어머니와 뇌사자 기증이 흔치 않던 시기에 돌파구를 찾고자 18시간의 생체 간 적출과 이식을 집도한 의사는 수술실 안팎에서 피가 마르는 듯한 순간을 이겨내고 있었다. 국내 최초의 생체 간이식에 성공하며 아버지의 간을 무사히 이식받은 환아는 어느덧 서른 살 어른으로 성장해 자신의 삶을 둘러싼 ‘최초’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어머니의 기억 갓 태어난 지원이가 선천성 담도폐쇄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카사이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들었지만 수술 말고 다른 치료법이 있을 거라 믿으며 아이와 집으로 돌아왔다. 수술 적기는 이내 지나가고 지원이의 피부와 눈은 노랗다 못해 초록빛을 띠기 시작했다. 아이의 배가 임산부처럼 부풀면서 실핏줄과 배꼽이 튀어나오고 당장이라도 터질 듯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딸과 둘이 남으면 넘치는 애정만큼 두려움에 짓눌렸다. 같은 질병을 앓는 환아들의 평균 생존 기간은 불과 13개월. 아이가 잘못되면 그 죄책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승규 교수의 기억 뇌사 장기기증이 생소하던 1990년대 초, 생체 간이식은 꼭 이뤄야 할 숙제였다. 토요일마다 동물 실험을 거듭했고 1994년 새로 부임한 김경모 교수와 의기투합해 생체 간이식을 준비했다.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지원이를 만났다. 담도가 없어 간 안에 담즙이 고이며 생긴 염증으로 간문맥이 딱딱하고 좁아져 있었다. 혈류가 이탈하는 문제도 있었다. 철저한 수술 계획을 세우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술을 시작하자 지원이에게 그 수술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게 됐다. 그 순간, 신의 선물처럼 이제껏 시도된 적 없는 혈관재건 아이디어가 떠오르며 대안을 찾아나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새로 연결한 혈관에 혈류를 개통하자, 이식된 창백한 간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18시간에 이르는 대수술이 비로소 성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수술 후 지원이는 면역억제제에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이대로라면 간이 금세 망가지고 퇴원도 요원했다. 애가 타서 매일 지원이의 병실에 들렀다. 부작용 없는 약을 외국에서 공수한 뒤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지원이를 통해 나는 자신감을 얻었고 2, 3호 생체 간이식이 이어졌다. 지금껏 무수한 환자를 수술했지만 ‘처음’이라는 경험은 늘 각별하게 기억됐다. “내가 그때 네 고민을 하도 많이 해서 까맣던 머리가 이렇게 백발이 됐잖니!” 실없는 농담에 지원이는 도리어 나의 건강을 걱정할 만큼 성숙한 어른으로 자랐다. 이제는 “지원 씨”로 점잖게 부르리라 마음먹어도 만나면 “지원아!” 오랜 습관이 튀어나오고 만다. 꼬맹이 때의 표정으로 다가오니 반가운 마음을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지원이의 기억 배에 커다란 흉터만 남아있을 뿐 기억에도 없는 간이식 꼬리표는 늘 따라다녔다. 매일 12시간 간격으로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면역력이 약해 늘 예민하게 건강을 챙겼다. 지역 병원에선 사소한 치료도 꺼려 매번 대전에서 서울아산병원까지 진료를 받으러 와야 했다. 어릴 땐 학교를 자주 결석해야 하는 게 싫었고, 커서는 회사 휴가의 대부분을 진료 일정에 맞추는 게 억울한 심정이었다. '나의 건강한 모습이 누군가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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