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공지
4세 때 사할린 강제 이주, 부정맥으로 生死고비... | ||
---|---|---|
7년전 영주 귀국 이희순씨... 서울아산병원이 병원·수술비 지원
지난 9일 새벽 이희순(76) 할머니가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 심장 박동이 제 맘대로인 중증 부정맥이었다. 수술이 급했지만 할머니에겐 병원비도, 보호자도 없었다. 알고보니 할머니는 60여년 망향의 설움에 눈물짓다 7년 전 영주 귀국한 러시아 사할린 동포였다.
경북 경주가 고향인 이 할머니는 네 살 때인 1942년 강제 징용당한 아버지를 따라 사할린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선 걸핏하면 '눈 작은 고려인'이라고 무시당했다. 학교도 못 다니고 평생 음식점, 농장에서 일했다. 나이 쉰 넘어 부정맥이 찾아왔다. 일하다 여러 번 쓰러졌지만 그저 팔자 탓이라 여겼다. 그러던 2007년 할머니는 한·일 적십자사의 영주 귀국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평생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출가한 딸들과 생이별하는 '나홀로' 귀국이었다.
▲ 13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부정맥 수술을 마친 이희순 할머니가 둘째 딸 알라 (왼쪽부터), 남기병 교수, 첫째 딸 논나씨와 함께 웃고 있다.
모국에서의 삶은 그러나 고달팠다. 인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한 달 52만원의 기초수급비로 힘겹게 살았다. 한국에 여행올 형편이 안 되는 세 딸은 돌아가며 매달 10만~20만원씩 용돈을 보내는 것으로 그리움을 대신했다.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딸들과 통화할 때면 "나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병세는 갈수록 깊어졌다.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첫딸 논나(60·상트페테르부르크)씨가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2011년 위암으로 남편을 잃고 경리로 일하며 가난하게 사는 그녀는 이웃에서 병원비를 빌렸다. 우리 돈 200만원, 병원비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주치의 남기병 교수(심장병원 심장내과)가 나섰다. "강제 징용으로 온갖 어려움을 겪었던 분이다. 사람부터 살리자." 병원 측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 지난 10일 6시간 대수수술이 이뤄지는 동안 둘째 딸 알라(46·사할린)씨도 찾아왔다. 마취에서 깬 할머니는 7년 만에 재회한 두 딸과 부둥켜 안고 울었다. 할머니는 서툰 우리말로 말했다. "조국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면서 감사히 살겠습니다."
러시아로 돌아간 첫째 논나씨는 며칠 뒤 병원에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지 3장을 러시아어로 빼곡하게 채운 논나씨는 한국을 '조국'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 내 조국,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