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연결’이라는 단어는 사물과 사물을 잇거나 현상과 현상 간의 관계를 맺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오랜 시간 환자와 소통하면서 간호사로서 경험한 ‘연결’은 점차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는

더 깊고 따뜻한 의미로 변화해 갔다.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정이 맺어진 상태’라는 연결의 다른 의미까지 지니게 된 것이다.

▲ 서울아산병원 암병원간호2팀 권유진 주임이 카자흐스탄 환자를 위해 직접 만든 소통 카드를 보여주고 있다.

작년 여름 카자흐스탄에서 온 한 할아버지 환자가 간 파열로 인한 출혈로 입원했다. 심한 발열, 소양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던 환자는 힘겨운 표정과 거친 숨소리로 고통을 전달했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장벽이 존재했다. 환자는 러시아어만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통역사와 전화 연결을 통해 소통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힘든 환자 대신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게 되는 게 답답하면서 미안했다. 무엇보다 환자의 고통이 가중되는 것 같아 괴로웠다. 환자가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간호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환자와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처음에는 책과 동영상으로 기본적인 러시아어를 익혀보려고 했다. 미숙하게나마 익힌 질문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맞춤형 의사소통 카드를 만들었다. 환자의 주요 요구 사항, 간호사 답변 등을 러시아어와 한국어로 정리했다. 환자의 표정, 손짓을 확인해 가며 보호자와 함께 내용을 보안했다. 환자와 나는 직접 말로 대화하지는 않았지만 글자와 함께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으로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 카드를 사용하며 환자, 보호자와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났다. 불안하고 당황하던 그들의 표정은 점차 신뢰와 존중의 미소로 변해갔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입원 기간 동안 우리는 단순한 의료적 관계를 넘어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신뢰의 끈을 맺었다. 의사소통 카드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환자를 생각하는 진심이 전달됐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퇴원할 때 환자가 한국말로 전한 “감사합니다”라는 말속에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끈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경험을 되돌아보며 나는 종양내과 병동에서 함께했던 수많은 환자들이 떠올랐다. 한 달에 한 번 항암을 하러 오며 서로 인사만 해도 웃음이 나는 친척 같은 환자, 작은 실수도 눈감아주며 나를 자식처럼 아껴준 환자, 최선을 다해 간호를 제공했지만 슬프게도 마지막을 함께 했던 환자….

그렇게 나는 지속적으로 환자와의 새로운 끈을 이어가고 있다. 이 끈은 단순한 연결을 넘어 환자들의 마음에 작은 리본을 묶어주는 듯한 감정적 유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8년간 간호사로서의 경험을 통해 나는 환자들이 병원을 떠날 때 혹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만든 이 끈이 여전히 그들의 삶 속에서 잔잔한 울림으로 남기를 바란다. 간호를 통한 '연결'은 단순한 치료의 과정을 넘어서 환자와 간호사 간의 인간적인 신뢰와 사랑의 교감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유대라는 것을 깨달으며, 앞으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 어린 연결로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