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공지
제목 : 보호자에게 건넨 지도 한 장 | ||
---|---|---|
등록일 : 2024.03.07 | ||
보호자에게 건넨 지도 한 장내과간호1팀 심예진 사원
조기 위암을 진단받고 용종을 절제한 환자가 보호자와 함께 우리 병동에 왔다. 건강 상태를 확인한 뒤 긴장을 풀어 드리기 위해 어디서 오셨는지, 보호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우리는 천안에서 왔어요. 내가 딸만 셋인데 얘가 그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막내딸이에요. 근데 나랑 사이는 별로 안 좋아요~” 환자는 이렇게 농담 섞인 대답으로 딸에 대한 애정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렇게 유쾌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보호자분, 식사 안 하셨어요?” 막내딸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입맛이 없으세요?” “아니요. 제가 옆에서 밥을 먹으면 냄새가 날 텐데 아빠는 지금 아무것도 못 드시잖아요. 더 배고파질 것 같아서 저도 굶으려고요.” 밥도 못 먹고 환자 곁을 지키는 보호자의 마음을 잘 알기에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역시 마음이 쓰였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환자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계속 밥 먹어도 된다고 해도 워낙 고집이 세서 말을 안 들어요. 시술한 것보다 얘가 옆에서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는 게 더 힘들어요. 미안해 죽겠어 아주.” 그때 직원식당 옆 보호자 식사 공간이 떠올랐다. 그곳에선 보호자가 조금 더 마음 편히 식사를 하고 올 수 있을 것 같아 위치를 알려주었다. 막내딸은 그런 곳이 있냐며 알려줘서 고맙다고 저녁에 꼭 가보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라운딩을 하며 커튼을 걷었는데 환자만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따님은 어디 갔어요? 식사하러 갔나요?” 환자는 고개를 가로 지으며 답했다. “아니요… 어제 저녁에 가보려고 했는데 길을 못 찾았대요.” 자세히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너무나 크고 넓은 우리 병원에서 보호자 식사 공간을 찾아가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보호자가 꼭 식사를 했으면 하는 마음에 ‘지도’를 떠올렸다. 흰 종이를 가져와 그곳까지 갈 수 있는 약도를 정성껏 그려 환자에게 전해 주었다. 다행히 그날 이후 보호자는 끼니를 거르지 않게 됐고 “간호사님들 덕분에 잘 있다 갑니다”라는 인사를 남기고 퇴원했다.
며칠 뒤 병동 택배함을 통해 천안 호두과자 한 박스가 전달됐다. 호두과자 포장지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자상함에 있어서 우등생이신 간호사님께 간호받는 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막내딸이 그 언니는 참으로 마음씨가 곱다 함도 알려드립니다. – 천안 호두과자 아저씨’
환자는 병원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환자들은 본인을 보살피러 온 보호자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에 본인보다 그들에게 더욱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다. 호두과자 아저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환자의 신체적인 문제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들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다가갈 수 있어야 간호가 빛을 발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해 준 호두과자 아저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