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문 넘어 보이는 얼어 붙은 한강이 익숙해 질만큼 유난히도 추운 날들이 많았던 올 겨울.
건강이나 질병과 관련된 가장 큰 화제는 독감이 아니라 노로바이러스(norovirus)인 듯 하다.
일종의 식중독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인데, 따뜻한 봄•가을에 꽃놀이•단풍놀이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살모넬라나 쉬겔라라는 용어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바이러스 식중독’이라는 용어도 새롭고, ‘노로’라는 이름은 낯설다 못해 귀엽다.
먼저 식중독(食中毒, food poisoning)이라는 말은 그리 좋은 용어는 아니다. 음식 자체가 탈을 일으킨다는 말인데, 독버섯을 먹고 탈이 났다던가 하는 경우에 사용하기에는 정확한 용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멀쩡한 음식에 세균이 ‘묻어 들어가서’ 탈을 일으킨다. 그래서 요즘은 식품매개질환(food-borne disease)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그러면 노로바이러스는 식품매개질환인가? 거의 그렇다.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감염된다. 짧은 시간에 집단발병을 하는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하지만 음식을 통하지 않더라도 환자가 오염시킨 주변 환경을 통해 바이러스를 얻게 되는 경우도 많고 사람 사이의 접촉을 통해서 전파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식품매개질환인 것도 아니다. 드물게는 구토하는 사람에게서 나온 바이러스 입자가 에어로졸 형태로 대규모 감염을 일으킨 보고도 있다.
왜 노로바이러스는 주목을 받게 되었을까?
사스바이러스(SARS-coronavirus)처럼 인간사회에 새로 출몰한 바이러스일까? 아니면 옛날부터 우리 곁에 있어 왔지만 우리가 그들의 진가(眞價)를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후자 일 것 같다.
이 무명(無名)의 바이러스는 1968년 첫 유행이 발견된 지역인 미국 오하이오주의 도시 Norwalk의 이름을 따서 Norwalk 바이러스라고 불리다가 이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유사한 바이러스들이 발견되어 여러 가지 다른 이름들로 불렸다. 2002년에 정식으로 ‘Norwalk 바이러스 비슷한 바이러스’ 라는 뜻으로 노로바이러스라는 이름을 함께 얻었다.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나서도 노로바이러스는 그다지 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이는 검출하기가 힘든 RNA형 바이러스라서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RNA를 DNA로 바꾸어 증폭하는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노로바이러스는 그 제대로 된 위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직까지 대장균이나 살모넬라, 쉬겔라 같은 세균들이 식품매개질환의 가장 흔한 원인인 반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노로바이러스가 가장 흔한 원인균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기뻐하는 말로 표현하면 ‘선진국형’의 구토·설사병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세균성 식품매개질환들이 따뜻하거나 더운 계절에 많이 발생하는데 비해 노로바이러스 감염은 겨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봄이 오면 확연히 줄어든다.
노로바이러스가 낮은 온도에서 잘 증식해서 그렇다고도 하고, 겨울에 날로 먹는 굴 같은 어패류에 바이러스 농도가 높아서 그렇다고도 한다. 노로바이러스가 자주 뉴스에 나오다 보니 굴 양식을 하는 분들도 고민이 많고, 일식집에서 회식을 하기로 되어 있는 병원 분들도 고민이 많다. 그 맛있는 음식들을 안 먹을 수는 없겠고 100℃ 물에 1분만 익혀서 드시는 것이 좋겠다.
한가지, 노로바이러스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혈액형이 따로 있다는 보고가 있다.
노로바이러스가 혈액형을 결정하는 항원을 감염의 수용체로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인데, 특히 B형이 노로바이러스에 아주 강하다고 한다. 노로바이러스도 사람을 가린다는 이야기인데, 놀랍게도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 2003;9:548)에 나온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