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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칼럼

메디컬칼럼
완치의 그날

 

의사가 되어 환자를 보기 시작한지 벌써 3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환아의 부모에게 당신의 아이가 암입니다, 또는 백혈병입니다라고 확진을 얘기해 주기가 몹시도 마음이 불편하다. 한 가족의 생활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궤도수정이 되어야 하는 참으로 황당스러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한 아이의 몹쓸 병의 치료를 책임진 의사로서 진단을 일러주고 앞으로의 치료계획, 예후, 치료 후에 생길수 있는 합병증 및 약물의 부작용 등을 가능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지만 그 순간에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담당의로선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최선의 치료를 선택하여 권유하지만, 환아 어머니들은 열이면 열 모두 울고만다. 아빠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더 가슴 아프다. 환아부모 울리는 내 직업이 참으로 싫을 때가 이 순간이다. 내 앞에서는 참다가도 면담을 마치고 나가선 모두가 울고 만다. 어느 부모는 61병동에 아이들 보지 않는 곳에 실컷 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환아와 가족들의 긴 고난의 길은 대개 이렇게 시작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미로의 입구에 서 있는 부모의 마음을 잘 알기에 매일 회진시에 환아의 상태와 치료계획을 명확히 해주려 하지만 얼마나 길을 밝혀주는 도움의 불빛이 되는지 늘 미진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시일이 지남에 따라 이렇게 여리게만 보이던 환아와 부모들이 온갖 역경을 겪어 내며 오직 완치라는 희망을 위해 참으로 많은 부분을 희생해가며 의연히 대처하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게된다. 실제로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헤아리기 힘든 가지가지 고난들을 지금도 많은 환아와 부모들이 겪으며 이겨나가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시련의 기간에도 맑은 눈망울과 천진난만한 미소와 용기를 잃지 않는 환아와 부모들이 보내는 기대와 신뢰는 담당의사를 격려해주기도 하나 때로는 무거운 책임의 중압감을 느끼게도 한다. 특히 환아의 상태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위험한 지경일 때 그리고 이런 환자들이 여럿일 때 해당 부모 뿐만아니라 담당의사는 함께 가슴앓이를 한다. 생명이 좌우될 수도 있는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하는 긴장감이나 때로 병에 져서 환아를 잃고 좌절감을 느낄 때는 의사도 어려운 순간이다. 그러나 고통과 실망이 점철되는 치료과정 중에도 인생의 좋은면을 생각하며 맑은 미소를 잃지 않는 환아와 부모를 생각하며 스스로 분발하게 된다.

 

장기간의 치료를 받다보면 환자가족 하나 하나가 모두 소설의 얘기 거리가 됨직한   감동의 대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용량 함암제를 맞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받으면서도 부모의 치료비 부담이 걱정되어 진토제를 사양하는 은미, 백혈병 재발 후 심한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회진시에 ‘주치의 선생님, 머리나 좀 빗으세요’라고 어른스러운 말을 던지던 아홉살 선화, 하늘나라 가고 나면 기분 나쁘다고 받지 않을 것이라고 떠나기 전에 자기 옷을 정리해서 주위에 나누어 주고 간 로이스, 자기 몸을 연구에 쓰라고 기증한 키 큰 소녀 정희, 예정된 종말의 두려움과 고통속에서도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던 민우 등에 대한 기억이 나를 분발케 한다.

 

긴 미로의 터널을 지나 모든 역경을 이기고 계획된 치료기간을 모두 마칠 때 우리는 이것을 off-therapy(치료종료)라고 하고 환아는 잠정적으로 치유되었다고 간주되며, 이후는 주기적인 진찰과 검사로서 재발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이는 치료의 끝이자 새로운 인생의 시작인 것이다. 수많은 검사의 결과를 기다릴 때 느꼈던 긴장감, 고통스러웠던 항암제 치료, 계획을 세울수 없었던 생활, 그리고 계획을 세웠다가도 아이의 상태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취소해야만 했던 불확실성 등 복잡한 고난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모두 마친 것이다.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에 대한 축하 파티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부모들은 중단과 재발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이제부터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막연함에 사로 잡히게 된다.

 

환아와 부모에게 치료 완료를 선언하는 순간에 소아종양 전문의사들은 가장 보람을  느낀다. 의사와 환자 가족간 관계의 한 장이 끝나고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Off-therapy의 면담시에는 치료과정에 대한 정리와 향후 계획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데, 역설적으로 많은 부모들이 언제나 끝낼까 하고 고대하던 치료완료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는 것을 본다. 이제부터는 주기적으로 외래로 담당의를 방문하여 재발 가능성 및 치료나 질병과 연관된 후유증 발생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이 시기에 가장 우려되는 점인 재발은 치료가 끝난 후 6개월 내지 12개월 사이에 주로  발생하므로 치료 종료 후 1년간은 자주 외래 방문과 검사가 필요하며 이후는 좀더 뜸하게 병원을 방문 해도 된다. 차츰 시일이 지나면 재발의 우려보다도 치료 후 뒤늦게 발생할 수도 있는 후유증이 염려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치료후유증은 암의 종류나 진단시의 연령, 그리고 치료의 종류에 따라 다르므로 치료종료 면담시나 외래방문시에 부모와 환자에게 설명되고 만약 발생한다면 가능한 일찍 그에 대한 치료가 시행되어야 한다.

 

치료완료와 함께 환아는 치료를 맡아준 의료진과 병원, 그리고 지금까지 한 가족 처럼 동고동락 했지만 여전히 치료중인 다른 환아와 그 가족들과 헤어져야 한다. 외래 방문 예약을 함으로써 담당의와는 계속 만나게 되지만 전화로라도 가끔 소식을 전하고 같이 만날 모임이 있으면 참가하는 것이 다른 가족이나 치료를 담당했던 의료진에게 좋은 위안이 된다. 삶과 죽음의 경험을 함께 했던 환자 가족들간에는 독특하고도 돈독한 동료의식이 생기고, 치료완료된 환아의 부모들은 아직 병과 치료과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다른 가족에 대해 간혹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보기도 한다.

 

치료의 종료는 가족생활의 원상 복귀를 의미하며, 부부와 가족관계나 교우관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고 그동안 못했던 여행을 하거나 특별한 계획을 세워 이루어 나갈수도 있다. 치료 후의 새로운 인생은 치료시보다 훨씬 수월하지만 작은 고비들이 있을 수도 있고 새 삶에 적응하는데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고난의 시기를 넘긴 여러 환아가족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다음 환자들을 치료하며 의사로서 책임의 중압감을 느낄 때 새로운 생명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소식을 가끔 전해준다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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