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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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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만의 귀향 저자 : 홍누리

 

연숙(여, 71세) 씨는 브라질의 한인 병원을 찾았다. 며칠째 풀리지 않는 속이 말썽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눈과 피부가 노랗다며 괜찮냐고 묻는 것도 어쩐지 찜찜했다. 그래도 평생 잔병치레 한번 없었기에 별일 아닐 줄 알았다. 첫 번째 병원에선 패혈증을, 두 번째 병원에선 담도암을 의심했다. 올해를 넘기기 힘들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말았다. 최선의 치료 방법을 물었지만 “일단 기다려보라”라는 말뿐이었다. 끝까지 치료해보겠다는 의사는 없었다. 브라질로 이민 온 지 34년 만에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였다.

 

처음 만난 서울아산병원

비행기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뒤로하고 연숙 씨 부부는 고국 땅을 밟았다. 마침 한국에 혼자 나와 있던 아들이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끌었다. “서울아산병원? 처음 듣는 병원인데….” 오래 전 기억에는 없는 병원이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아들의 선택만 믿어도 될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한 뒤 왜 이 병원이어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규모와 서비스 면에서 브라질 병원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정밀 검사 결과 암은 이미 간 쪽에 넓게 퍼져 있었다. 간의 60%를 절제해야 했다. 수술 전, 암이 없는 좌측 간을 키워 수술 후에도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간문맥색전술을 먼저 시행했다. 부분마취 후 진행된 시술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따랐다. 연숙 씨는 이를 악물었다. 땀이 줄줄 흘렀다. 시술 화면을 보자 통증이 배가되는 듯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잘 참으셨습니다”라는 의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눈을 뜨자 머금고 있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본격적인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끝없는 고통

수술을 앞두고 황달이 잡히지 않았다. 연숙 씨는 기진맥진했다. “수술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하루만 더 기다려 봅시다.” 간담도췌외과 이재훈 교수의 말에 가족들은 애간장이 탔다. 무슨 수라도 써야 하는 건 아닐지 전전긍긍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수치가 조금 내려갔다며 이 교수가 서둘러 수술을 진행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장 긴장해야 할 순간에 연숙 씨의 남편은 되레 마음이 놓였다. 브라질에서 25시간의 비행을 강행하며 온 건 의료진에게서 이 한마디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 아내를 잘 부탁드립니다.” 수술은 9시간이 걸렸다. 연숙 씨는 죽다 살아온 기분이었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하지만 담도암은 금세 전이될 수 있습니다.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드디어 퇴원이었다. 아들 집에서 잠시 한숨 돌리며 면역력을 키워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병원을 떠나자 열이 나기 시작했다. 며칠만에 응급실로 되돌아왔다. “빨리 잘 오셨습니다. 입원해서 좋은 컨디션을 같이 만들어 보죠.” 이 교수는 놀란 연숙 씨 부부를 안심시켰다. 병을 발견하고 불과 한두 달 지났을 뿐인데 하루하루가 급박했다. 때이른 낙관이나 비관은 금물이었다. 의료진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며 기다렸다. 최선의 치료를 해줄거라 믿었다.

 

마지막 방법

종양내과 유창훈 교수를 만나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14차까지 진행해도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이대로 간다면 예상 수명은 6개월 남짓이었다. 남편은 눈인사하던 담도암 환자들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연숙 씨는 “천하의 서울아산병원도 어쩔 수 없는 환자가 있나 봐”라며 차분히 칠십 평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 교수가 마지막 방법을 제안했다. “임상 시험 중인 면역 치료제를 시도해봤으면 합니다.” 국내 병원 중 열 군데만 들어왔으며 전 세계에서 600여 명의 환자만 받고 있는 항암제였다. 서울아산병원에 왔기에 주어진 기회였다. ‘외국에서 온 데다, 살 가망까지 낮은 나를 성심성의껏 대하는 의사를 만났구나!’ 연숙 씨는 기막힌 행운이라고 느꼈다. “해볼게요.” 유 교수는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일단 시작하면 브라질로 돌아갈 생각 하시면 안 됩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인생의 전환점이 시작되고 있었다. 부부는 34년 전처럼 손을 꼭 잡았다. “여보, 우리 다시 한국으로 이민 온 거 같아.” “그때처럼 잘 할 수 있을 거야.”

 

기막힌 운

“별일 없으시죠?” 진료실에 들어서자 유 교수가 웃으며 연숙 씨 부부를 맞이했다. “별일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암 환자가 뭐 이렇게 입맛까지 잘 돌아요?” 살가운 농담이 오갔다. 2주마다 면역 치료제를 맞은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더 이상 예상 수명이나 또 다른 치료법에 관한 이야기로 마음 졸이지 않았다. 진료 후에는 종양내과 박정은 연구코디네이터가 평소 컨디션을 점검하며 세세한 질문에도 상세히 답해주었다. 임상 시험 중인 항암제를 제공받으며 연숙 씨를 전담하는 코디네이터까지 있으니 크게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아예 병원 근처에 집을 얻어 2주마다 나들이하듯 병원에 들렀다. “서울아산병원이 있는 줄도 모르던 제가 이제는 서울아산병원을 중심으로 살고 있어요. 최고의 병원과 나를 위해주는 의료진, 맞춤형 약의 삼박자가 어쩌면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요? 담도암이라는 질병보다 제 운이 조금 더 셌던 모양이에요.” 연숙 씨에게 더 이상 인생을 건 계획이나 열심히 이뤄내야 할 일은 남아있지 않다. 대신 매 끼니를 준비하며 반복되는 일상에 감사를 채워간다. 설사 주어진 운을 모두 썼다 해도 이제는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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