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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건강이야기
아들의 상처를 보듬는 사람 저자 : 홍누리

 

아들의 몸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엄마는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열여덟 살에 크론병을 진단받은 요한이는 10년째 형체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커피만 마셔도 장폐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고 약을 먹으면 궤양이 도졌다. 스테로이드제 효과도 점점 사라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보다 지친 마음이 걱정이었다. 엄마는 대책을 찾으며 기도했다. “요한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너의 의미

요한이는 마흔 살에 깜짝 선물처럼 찾아온 아이였다. 남편은 요한이를 안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다. 요한이도 껌딱지처럼 아빠를 졸졸 따랐다. 그러나 아빠의 품은 여덟 살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지병으로 세상을 서둘러 떠난 것이다. 3일 동안 먹지도, 울지도 못하는 엄마 옆에서 요한이는 “엄마가 가엾다”는 이야기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크는 내내 속 썩이는 말 한번, 철없는 눈물 한 방울 내비친 적이 없었다. 그럴수록 엄마는 아들이 안쓰럽고 애틋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요한이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기 시작했다. 퉁퉁 부은 다리를 펴지 못해 걸을 수도 없었다. 결석하는 날이 늘어갔다. 동네 병원의 치료로는 부족했다. 종합병원으로 옮기고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2년이 지났을까? 배가 아프다며 간 병원에서 “이 상태로 어떻게 일상생활을 했어요?”라는 질문을 들었다. 크론병이라는 생전 처음 듣는 병을 진단받은 것이다. 엄마는 모든 게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스무 살을 넘기면서 이상 반응은 끝도 없이 나타났다. 독서실에 몇 시간 앉아있으면 다음 날은 아예 일어나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대로 통증으로 이어졌다. 매일 새로운 원인과 증상에 시달리며 20대 초중반을 보냈다. 속수무책으로 10년을 보내고 엄마는 크론병 치료의 권위자를 찾아 나섰다. 서울아산병원 대장항문외과의 유창식 교수였다.

 

진심의 힘

더 이상의 일상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작년 10월 첫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실려 들어왔지만 수술을 받고 나갈 때는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수술 효과에 들떠 있던 것도 잠시, 까닭 모를 심한 복통이 찾아왔다. 이번엔 복막염이었다. 천공으로 변이 새면서 온몸으로 균이 퍼진 것이다. 긴급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에 참여한 간호사가 후에 수술 상황을 들려주었다. “수술 잘 끝내서 환자를 무사히 돌려보냅시다”라며 유 교수가 수술을 시작했고 의료진은 유착된 장기를 일일이 손으로 떼서 세심히 닦았다는 것이다. 워낙 염증 수치가 높아 장은 손대지 못하고 임시 장루를 뺀 아들의 모습에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유 교수와 주치의, 105병동 간호사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힘들 수 있다며 객관적인 상황을 알려주면서도 “걱정 마세요. 괜찮아질 거예요”라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평범한 한마디에 담긴 진심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났다. 의료진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있어 연이은 두 번의 수술을 견딜 수 있었다.

 

매일 매일이 시험

하나를 치료하면 또 다른 문제가 찾아왔다. 장 길이가 많이 줄면서 흡수가 되지 않고 탈수도 심해졌다. 천공된 부분이 아물면 하기로 했던 세 번째 수술을 앞당겨야 했다. 그런데 유 교수가 팔에 깁스를 해 수술을 집도할 수 없게 되었다. “교수님의 팔이 다 나을 때까지 수술 안 할래요.” 요한이는 평소답지 않게 고집을 부렸다. 유 교수 역시 처음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너를 지금 이대로 보내면 또 응급실에 실려 올 게 뻔해. 실력 있는 교수님이 수술해주실 거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볼게.” 요한이의 불안을 예상한 듯 미리 세워둔 계획을 들려주었다. 요한이는 순순히 따랐다. ‘사람을 의지하고 신뢰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엄마는 더 보탤 말이 없었다.

수술 후 진통제로도 잡히지 않는 통증에 시달렸다. 요한이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남들은 일주일이면 아무는 상처가 한 달이 넘도록 아물지 않았다. 매일 상처를 소독하면서 언제 또 터질지 몰라 불안했다. 비좁은 보호자 침대에서 엄마는 숨을 죽이고 ‘내가 대신 죽을 테니 제발 내 아들의 지독한 병을 좀 거둬주세요’라고 기도했다. 회복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

 

네가 그린 아빠의 모습

병동에 있는 사람마다 엄마에게 신기한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이 온다고 요한 씨처럼 활짝 웃는 환자는 처음 봤어요.” ‘몸을 관리하기도 힘들 텐데 웃는다고?’ 설마 하며 유심히 지켜보았다. 요한이는 유 교수가 회진 올 때까지 밥도 먹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요한아 힘들 때마다 걸어야 해. 절대 처지면 안 돼. 알았지?”라고 유 교수가 한마디 하면 그날은 종일 걸었다. 마음 깊이 숨겨둔 아빠 잃은 상처를 유 교수가 보듬은 걸 엄마는 짐작할 수 있었다. “요한아”하고 따뜻하게 이름 부르며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결책을 마련해 주는 건 요한이가 늘 상상하던 아빠의 모습이었다. 든든한 조력자를 만났다는 생각에 아들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없는 엄마의 부담감은 조금 가벼워졌다.

퇴원하는 길에 요한이가 말했다. “엄마, 서울아산병원에 오길 잘한 것 같아. 나는 유 교수님이 참 좋아.” “요한아, 너 가끔 20대를 의미 없이 병상에서 보낸 게 아깝다고 했지? 감사한 인연을 만나기 위한 시간이었나 봐. 그러니까 우리 지치지 말자!” “오케이, 접수!” 둘은 닮은 걸음으로 걸었다. 천천히, 씩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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