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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건강이야기
우는 남자 저자 : 홍누리

 

“지금까지 어떻게 버티신 거예요? 숨 쉬는 게 놀라울 정도예요. 당장 입원하지 않으면 생명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첫 진료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승섭 씨는 입원에 필요한 설명을 듣고 나와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스물여덟. 짧은 삶이 아쉬운 건 아니었다. 환자로 눕는 순간 당장의 밥벌이가, 아버지의 치료가 중단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래도 살아야죠
승섭 씨는 양식 요리사로 하루에 14시간씩 물과 불을 다뤘다. 요리는 체력전과 같아 늘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늘 달리던 구간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주방에서도 숨이 찼다. ‘폐렴이나 천식 같은 건가?’ 동네 병원 두 곳에서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폐가 많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심각성을 느꼈다. 그리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충격적인 진단을 들은 것이다. 
눈을 뜨자 응급실이었다. 의식 잃은 그를 옮긴 것이다. ‘이렇게 큰 병원이면 치료비도 비싸지 않을까.’ 잠시도 편치 않았다. “저 집에 가야 해요. 병원비가 없어요.” 울면서 고집을 부렸다. 의료진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떻게든 도움받게 해드릴 테니까 제발 치료받으세요. 일단 살고 봐야죠.” 의료진은 승섭 씨가 삶을 포기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노력했고, 병원은 지원을 약속했다. 지원을 결정하는 데 승섭 씨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형편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승섭 씨가 이제까지 경험한 세상과는 뭔가 달랐다.

 

내게 너무 버거운 세상
입원 서류에 보호자 이름을 써야 했다. 승섭 씨의 손이 멈췄다. “꼭 써야 하나요?” “네.” 마지못해 누나의 이름을 적고 전화를 걸었다. “누나, 나 폐렴이 있대서 병원에 왔는데 가족 이름을 쓰래. 혹시 병원에서 전화가 와도 놀라지 마.” “승섭아, 많이 아파? 누나가 갈까?” “별거 아냐~.” 누나가 걱정할까 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꽤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승섭 씨는 일찍이 부모가 갈라서는 아픔을 겪었다. 아버지는 그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다. 그래도 삼 남매를 버리지 않은 아버지가 안쓰럽고 고마웠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주방을 들락거리며 요리를 배웠다. 번 돈은 아버지의 빚을 갚는 데 쓰였다. 그 사이 누나는 멀리 시집갔고, 마음의 상처가 컸던 여동생은 일찍 독립했다. 승섭 씨는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를 혼자 짊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돈만 벌면 가장의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 틀어진 건 지난해였다. 퇴근하고 귀가하자 퀴퀴한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똥을 싼 채로 뭉개고 있었다. “또 술 취했어요?” 뒤처리는 승섭 씨의 몫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밥을 먹고 돌아서자마자 아버지는 또 밥을 달라며 역정을 냈다. 알코올성 치매의 시작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혼자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를 요양 병원에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모든 원망이 세상을 향했다. 그러나 그의 눈물과 이야기는 어느 곳에도 닿지 않았다. 철저히 혼자라는 것을 실감할 뿐이었다.

 

살 수 있다는 희망
입원 후 감염내과 최상호 교수가 치료를 시작했다.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예요. 단순하게 설명하면 면역력은 있지만 면역력을 지휘할 신경계가 망가진 거죠. 그래서 폐포자충폐렴도 생긴 거고요.” 폐는 부수적인 문제일 뿐 진짜 원인은 면역계 질환이었다. 차츰 인공호흡기를 떼고 폐도 호전되었지만 또 다른 증상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몰라 막막했다. 우울해서 잠도 오지 않았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몸까지 망가지면 더 이상 버틸 길이 없었다. ‘희망도 없는데 이쯤에서 죽는 게 나을지 몰라.’  
오전 회진 때였다. 최 교수는 간밤의 그의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십 년 전만 해도 이 병을 앓으면 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약만 잘 먹으면 기대수명을 채울 수 있어요. 당뇨병이나 고혈압을 안고도 다들 잘 살잖아요!” 설명을 듣다 보니 별일 아닌 것만 같았다. 자포자기의 심정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있었다. 질병과 함께 사는 삶. 많은 사람이 아픔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왠지 안심됐다.

 

빚진 인생
호흡이 안정되면서 퇴원했다. 감기도 걸리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수시로 청소하며 떨어진 체력을 되찾는 데 집중했다. 병원의 지원으로 입원비는 물론 당분간의 병원비 걱정을 덜었다. 회복되는 대로 다시 일자리를 구할 계획이다. 틈틈이 구인 공고를 보다 보면 ‘다시 주방에서 14시간씩 요리할 수 있을까?’ 건강할 때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무력감이 찾아온다. 어느새 눈물이 그렁하지만 금방 닦아낸다. “죽을 병이 아니라는데 왜 처져 있어요? 좋은 날씨 보면서 살 수 있는 만큼 살아요”라던 간호사, “잘 챙겨 먹고 웃으면서 퇴원하세요~”라며 따뜻한 밥과 함께 찾아온 영양사님, “침대에 누워만 있지 말고 기지개 켜고 기운 내봐요!”라며 병실 바닥을 씩씩하게 닦던 청소 여사님….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응원 덕분이다. “만약 응급실에서 고집부리고 집에 돌아갔으면 지금쯤 고독사의 주인공이 됐을 거예요. 서울아산병원에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걱정, 대가 없는 봉사로도 한 사람을 살리기에 충분하다는 걸 알았어요.”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인생 목표가 생겼다. 울고만 있기엔 아까운 스물여덟. 마음 같지 않은 운명을 거스를 시간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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