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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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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 없는 계획 저자 : 홍누리

 

몽골에서 회계사였던 부템즈(34) 씨는 4년 전 남편을 따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편이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첫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2년 뒤, 그녀의 배 안에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다만 산모에게 흉수가 있다는 진단을 들었다. 주변의 추천으로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에서 진료받기 시작했다. 최고의 의료환경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 한편으론 안심이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흐르는 듯했다. 갑자기 양수가 터져 집 근처 종합병원으로 달려가기 전까지는.

 

내 아이의 운명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자가 호흡이 어려워 인공호흡기를 끼고 많은 의료 장비에 둘러싸여 있었다. 병명은 알 수 없었다. 부템즈 씨는 슬픔을 억누르고 서둘러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우리 테무진을 봐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를 안아보지 못한 산모의 간절한 부탁이었다. 신생아과 이병섭 교수는 아이가 입원한 병원에 연락해 전원에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아이의 질병은 유전의학센터에서 밝혀졌다. ‘누난증후군’. 특이한 얼굴 형태와 선천성 심장질환 등을 보이는 희귀 유전질환이었다. 테무진의 경우 귀가 살짝 내려가고 이마가 크며 흉부가 튀어나왔다. 또 자가 호흡이 어렵고 잠복고환증 등 다양한 증상을 보였다. 앞으로의 치료가 성장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스무고개처럼 하나씩 풀어갈 일이었다. 그래도 부템즈 씨는 희망적인 소식이 있을거라 믿고 기다렸다. 기도절개관을 삽입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 참아온 눈물이 터져버렸다. 영영 멈추지 않을 듯이.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소리 없는 눈물

신생아과, 이비인후과, 소아비뇨의학과, 소아심장과 등 들러야 할 진료과가 한둘이 아니었다. 테무진은 의사가 몸에 손만 대도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삽입한 기도절개관 때문에 우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고요한 진료실은 오히려 아이가 느끼는 고통을 상상하게 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해~ 금방 낫게 해줄게.” 의료진 누구나 눈물의 주범이 된 듯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꼭 필요한 검사인가요?” 부템즈 씨는 되묻곤 했다. 학생인 남편의 벌이로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경제적 보탬이 되고 싶어도 아이에겐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다. 병원비를 최대한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이 교수는 엄마의 질문 너머의 사정을 짐작했다. 어느 날 진료 후 병원비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의뢰서는 이미 써둔 상태였다. 테무진을 치료해보겠다고 연락한 것에 이어 또 한 번 희망을 선물한 것이다.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 부템즈 씨의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일단 같이 가보자고 등을 떠밀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얼마 후 병원 직원들의 기부금으로 치료비를 지원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격이 비싸서 미루고 있던 호흡기 예방 접종도 할 수 있었다. 왕복 4시간의 서울아산병원을 오가는 길이 그 어디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테무진, 너도 남을 돕는 일에 가슴이 뛰는 사람으로 커야 해. 알았지?”

 

어떤 믿음

3개월째 몸무게가 늘지 않던 지난 여름. 이 교수의 걱정이 깊었다. “이 정도면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체중이 늘어야 앞으로 수술도 할 수 있을 텐데….” 소아소화기영양과에 의뢰하겠다고 했다. 부템즈 씨는 믿는 구석이 있는 듯 씩씩하게 답했다. “걱정 마세요. 곧 잘 먹고 금방 클 거예요!”

테무진이 처음 퇴원할 때만 해도 엄마는 불안에 휩싸였다. ‘집에서 혼자 잘 돌볼 수 있을까? 목소리가 안 난다고 아이가 우는 줄도 모르면 어떡하지?’ 그러나 하루에 20개 이상의 관을 갈아주며 가래 소리를 구별하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소리가 조금만 달라져도 눈이 번쩍 뜨였다. 아이가 잠들면 누난증후군 치료와 집에서 보조해야 할 것들을 열심히 공부했다. 재활 운동을 할 때마다 힘들다고 떼쓰던 아이는 점차 혼자 걸으려고 애썼다. 둘만의 합을 맞추며 믿음을 쌓아갔다.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자 테무진의 몸무게가 늘기 시작했다. 들르는 진료실마다 안도 섞인 인사가 나왔다. “테무진, 조용히 잘 크고 있었구나!” 엄마는 테무진을 자랑스럽게 쓰다듬었다.

 

작은 소원을 빌면서

테무진의 기도절개관 제거 여부를 결정짓고자 내시경 검사를 했다. 여전히 자가 호흡은 되지 않았다. 기도절개관을 지속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희귀질환을 안고 살아야 하는 테무진의 운명을 대체 언제쯤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서글픈 눈물을 숨기려는 엄마의 눈을 아이의 큰 눈망울이 열심히 쫓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부템즈 씨는 예전에 빌었던 작은 소원이 기억났다. ‘건강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만 자랐으면….’

가을이면 남편의 박사 과정이 끝난다. 학업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려던 계획은 무기한 보류되었다. 하루 빨리 몽골에 돌아가고 싶지만 서울아산병원만큼 최상의 진료를 해줄 병원이 그곳엔 없다. “테무진을 만나기 전까지 특별한 아이를 가진 부모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는지 몰랐어요. 인내와 끈기를 매순간 시험하는 기분이죠. 그런데 아이가 웃으면 그게 세상의 전부가 돼요. 테무진이 모자란 저를 좋은 엄마로 키우고 있는 것 같아요.”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생의 몇 수를 무르고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이 있으니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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