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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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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임 씨의 눈물 저자 : 홍누리

 

고향을 등진 선택

허문임(75세), 손예진(50세) 모녀의 마지막 기억 속 북한은 처참했다. 동이 트면 두만강 변에는 매일 시체가 떠내려왔다. 먹을 것이 없어 삶을 마감한 사람들은 죽어서도 묻힐 곳이 없었다. 문임 씨는 곧 가족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중국에 있는 친척에게 돈을 꾸겠다며 떠난 뒤 세 자녀를 중국으로 불렀다. 친척 집에 숨어 산 지 5년. 둘째가 먼저 대한민국으로 떠나고 문임 씨와 장녀인 예진 씨도 뒤따랐다. 2004년 봄이었다. 서울에 살 집을 얻은 날, 문임 씨는 햇빛 쏟아지는 자리에 한참을 누워있었다. “내가 남한의 수도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행복도 잠시. 막내아들이 포함된 탈북자 팀이 북한에 잡혀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족을 잃지 않으려 고향을 떠났지만 막내를 지키는 데 실패한 것이다. 문임 씨는 울지 않았다. 대신 고행하듯 궂은 식당 일을 하면서 거처 없는 탈북자들을 집에 묵게 했다. 생이별한 아들도 북에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곁의 두 자녀가 남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뒤늦은 학업과 혼사를 억척스레 뒷바라지했다. 시간이 꽤 흘러 늘 강하기만 했던 문임 씨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미안해 그리고 힘내

2020년. 동네 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위암을 발견했다.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또 있었다. 담도염과 담낭염에 패혈증 증상까지 더해져 물만 먹어도 토하고 허리가 아파 쪼그리고 밤을 지새웠다. 10년 전에도 담석으로 수술 진단을 받았었다. 그러나 문임 씨는 약으로 버텼다. “그때 수술을 받았으면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을 텐데….” 예진 씨는 당시 엄마를 돌보지 못한 걸 후회했다. 한편으론 여전히 통증을 참기만 할 뿐 의료진의 도움을 청하지 않는 엄마에게 화도 났다. 그러나 간담도췌외과 이우형 조교수는 달랐다. 문임 씨를 달래가며 염증을 체크하고 원인을 살폈다.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싶어요. 저를 믿고 아픈 곳이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추적관찰 끝에 암의 직전 단계인 선종을 발견했다. 12월 22일 유두부 절제술과 췌·십이지장 절제술이 이어졌다. 크리스마스 날, 예진 씨의 자녀들이 할머니를 보겠다며 병원에 찾아왔다. 면회는 불가능했다. 아쉬움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자 중환자실 간호사가 연락을 받고 뛰어나왔다. “크리스마스 인사를 할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라며 핸드폰을 받아서 들어갔다. 잠시 후 영상통화로 의식 없는 문임 씨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인사했다. “할머니 메리 크리스마스~ 얼른 낫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요!” 간호사의 도움과 손주들의 응원이 닿은 걸까. 다음날 문임 씨의 의식이 돌아왔다. “꿈에서 누가 나를 큰 소리로 불렀어.” 예진 씨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 것 같았다. “엄마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이 온 건 가봐!” 

 

멈출 수 없는 눈물

일흔이 넘은 나이,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병원비도 매일 쌓여갔다. “이만큼 살았으면 됐는데 내가 괜한 욕심을 냈나 보다….” 삶의 의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는 아직 할 일이 있잖아. 북에 있는 아들을 만나야지!” 달래는 예진 씨 역시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도움 청할 친척도, 친구도 없는 설움이 커져갔다. 새벽녘이면 아무도 없는 성내천 다리에서 혼자 울다가 엄마 곁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사회복지팀 신현수 사원에게 전화가 왔다. “구청에서 긴급의료지원을 하는데 알고 계세요?” “그게 뭐죠? 탈북자도 받을 수 있나요?” 병상을 지켜야 하는 예진 씨 대신 신현수 사원은 필요한 서류를 모으고 제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좋은 소식이 도착했어요! 구청에서 치료비를 보냈고 모자란 금액은 병원에서 지원하겠습니다.” 문임 씨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뭐한 게 있다고 그 큰돈을 주나? 이걸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쏟아지는 눈물에 숨이 차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딸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새겼다. “감사하다고 전해줘. 꼭.”

 

고마운 이름을 적으며

김병재, 김희주, 이다미, 최진수, 최주연, 최현진…. 예진 씨의 수첩에는 85병동 간호사의 이름과 사연들이 가득했다. 아쉬운 이름 하나에서 시작된 엄마의 부탁이었다.

지난 여름, 오랜 입원과 시술로 두 달 넘게 대변을 보지 못한 적이 있었다. 변비약도 효과가 없었다. 또 한 번의 시술을 앞두고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한 남자 간호사가 “이대로 시술을 받으면 불편하실 것 같아서요…”라면서 장갑을 들고 찾아왔다. 딱딱하게 굳은 변을 손으로 빼주었다. “젊은 사람이 이렇게 궂은일까지 하기 힘들 텐데. 어떤 부모인지 자식 농사를 잘 지어 좋겠네….” 문임 씨는 16년 전에 헤어진 막내아들이 떠오른 듯 간호사의 부모를 부러워했다. 고마운 마음에 ‘키가 크고 앳된 얼굴에 정다운 사투리를 쓰는 고마운 간호사’라고 적어 두었다. 그런데 수술 후 병동이 바뀌면서 그 간호사를 만날 수 없었다. “이름이라도 적어둘 걸….” 그 뒤로 고마운 간호사가 있으면 이름부터 묻고 적었다. 문임 씨에게 더 이상 죽음은 두렵지 않다. 최선을 다해 간호하는 이들에게 ‘살아 숨 쉬는 것’, 그것이 최선의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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