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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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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문턱에서 저자 : 홍누리

이별의 문턱에서

 

멕시코에 코로나 확진자가 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계속됐다. 김충영(여, 55세) 씨는 설마 하며 병원에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양성이었다. “아무 증상이 없고 기저질환도 없어 격리 기간에 조금 쉬면 나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눈을 떠보니 온몸에 어지러운 선이 꽂혀 있고 익숙한 언어가 들리는 거예요. 의료진이 온통 한국 사람이더라고요. ‘이상하다? 분명히 마지막 기억은 멕시코의 병원이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정말 혼란스러웠죠.” 남편 정갑환 씨가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재준 아빠, 나 중환자실로 옮기나 봐.” 격리 중이던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멀쩡한 사람을 왜?” 깜짝 놀라 병원으로 뛰어갔다. 이미 수면 치료에 들어갔다는 의료진의 설명에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어서 깨우라고 소리쳤다. ‘의료 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불안이 커졌다. 그래도 의료진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이른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병원이었다. “코로나는 완치됐지만 그 후유증으로 패혈증과 폐섬유증이 번졌습니다. 6시간이 고비입니다.” 이미 폐가 딱딱하게 굳어 제 기능을 할 수 없고 의식마저 없는 상태였다. 마지막 인사도 할 수 없는 생이별에 말문이 막혔다.  

22년 전, 부부와 두 아들은 멕시코로 떠났다. 그리고 한국에서 모자를 수입해 판매했다. 스무 살에 시집와 살림밖에 모르던 충영 씨는 장사 수완이 제법 좋았다. 쉬는 날도 없이 일하면서도 밤마다 네 가족은 둘러앉아 기나긴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더욱 애틋한 아내가, 엄마가 병원에서 홀로 죽음의 고비를 맞고 있었다. 갑환 씨와 두 아들은 급히 에크모(체외순환) 조치가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 차로 13시간이 걸리는 몬테레이의 한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빠른 이동을 위해 에어앰뷸런스에 올랐다. 가는 동안 갑환 씨가 파일럿에게 물었다. “혹시 이걸 타고 한국까지 갈 수 있습니까?” 대답은 ‘예스’였다. ‘한국만 가면 살릴 수 있을 텐데, 한국만 가면….’

 

이번만 이겨내면

유일한 치료 방법인 폐 이식은 서울아산병원이 경험과 실력 면에서 최고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들은 서둘러 서울아산병원에 메일과 의료기록을 보냈다. “저희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서울아산병원은 회복 가능성은 낮지만 한국에 무사히 올 수 있다면 치료해 보자고 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많은 위험을 감수한 병원의 결정에 가족은 큰 힘을 얻었다.

충영 씨와 아들, 현지 의료진을 실은 에어앰뷸런스는 4개국을 거쳐 24시간 비행 끝에 한국에 닿았다. 멕시코에서 마음 졸이고 있던 갑환 씨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랑 무사히 도착했어요.” “그럼 됐다!” 한결 마음이 놓였다. 서울아산병원에만 도착한다면 아내는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한국에 들어가기 위해 아내의 옷가지를 챙기는데 옷 주머니에서 쌈짓돈이 잡혔다. “고생해서 번 돈을 써보지 못하고…. 아이고 이 바보.” 그런데 집어 든 옷마다 돈이 들어있었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민 생활의 불안을 아내는 그렇게 대비해 온 것이다. “조금만 더 버텨라. 서울아산병원이 살려주면 여생을 한국에서 여행 다니며 살자!”

 

어쩌면 마지막 기회

장기간 항생제 치료와 수혈을 받아온 충영 씨는 항체 거부반응이 잇따랐다. 이식을 할 수 없게 될까 봐

모두 걱정했다. 지난해 9월 11일. 드디어 이식 수술이 진행되었다.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를 비롯한 20여 명의 의료진은 먼 길을 달려온 환자와 가족에게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었다. ‘이제 집으로 함께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수술은 10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성공적인 수술 이후 충영 씨는 의식을 되찾았다. 그러나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대화도, 거동도 어려운 상태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누군가 날 위해

‘건강하던 내가 폐 이식이라니? 어떻게 나도 모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호흡기내과 홍상범 교수·오동규 교수,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와 간호사 등 의료진이 수시로 병실에 들렀다. “밥은 잘 드셨나요? 운동도 하시고요? 조금만 힘내면 좋아질 겁니다”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모든 교수님, 간호사마다 기술이 아닌 정성으로 저를 대하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저를 응원하는 사람이 훨씬 많더라고요. 저를 받아주고 치료해준 서울아산병원은 물론이고 이곳까지 데려온 가족과 폐를 선물하고 간 기증자까지 말이에요. ‘잘 살아야겠구나. 꼭 보답해야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죠. 앞만 보고 산 제게 옆도 살피며 살라는 하늘의 뜻이었나 봐요.” 

몇 개월간 병간호에 매달린 아들은 멕시코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엄마를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는데….” 이별의 문턱에서야 알 수 있었다. 살아있다는 건 함께 울 수 있고, 앞날을 약속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걸. 출국 전 뜨거운 포옹에 가족 모두 눈물이 번졌다. 충영 씨가 눈물을 닦으며 약속했다. “우리 곧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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