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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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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얼굴찾기 저자 : 홍누리

숨은 얼굴 찾기

 

유성형(57) 씨가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섰다. 모자와 색안경, 마스크를 쓰면서 일그러진 오른쪽 얼굴을 잘 가렸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청소년기부터 민얼굴을 의료진 외에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었다. 얼굴을 숨기고 사는 건 퍽 고된 일이었다. “전기도, 인터넷도, 심지어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적막한 산 속에서 3년 전부터 살기 시작했어요. 생활하기 조금 불편해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오후엔 서울아산병원에서 진료가 있다. 성형 씨의 유일한 외출이었다.

 

잃어버린 얼굴

초등학교 5학년 때 혈관섬유종으로 오른쪽 코와 안면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여러 차례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거치며 후유증이 크게 남았다. 오른쪽 얼굴이 뼈만 남다시피 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쪽 시력과 청력이 떨어졌다. 치아가 빠지기 시작하며 발음도 뭉개져 들렸다. 부모님은 아들의 치료에 전 재산을 쏟아부었다. 형과 동생은 학업까지 중단해야 했다. 그런데도 12살 이전의 얼굴로 되돌릴 수 없었다. 얼굴을 보일 때마다 놀리는 친구들과 울음을 터뜨리는 부모님 사이에서 성형 씨는 늘 괴로웠다. ‘왜 하필 얼굴에 병이 났을까?’ 답 없는 질문에 움츠러들었다.
20대 중반 성형수술을 결심했다. 그런데 뇌와 시신경 경계에 종양이 보인다며 신경외과로 보냈다. “종양의 위치상 제거하면 생명은 조금 더 연장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클 겁니다.” 성형 씨는 그때 처음으로 인생의 끝을 인식했다. 병원을 나와 발달 장애인의 직업재활소로 갔다. 원예 프로그램을 도우며 얼마가 될지 모르는 삶을 채워 가기로 했다. “매일 마지막이자 시작처럼 살았어요. 기적처럼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왔네요.”

 

파이팅의 정체

3년 전이었다. 갑자기 오른쪽 눈 아래에 염증이 생기며 끊임없이 진물이 흘렀다. “썩는 냄새가 나요.” 마주친 사람마다 손으로 코를 막고 말했다. 성형 씨는 정작 자신에게 나는 냄새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오른쪽 얼굴의 뼈와 살이 괴사 되고 있었다. 눈도 감기지 않았다. 대구와 안동의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서울아산병원에 와서야 만성 골수염 진단을 받았다. 염증을 긁어내고 허벅지 살을 얼굴에 이식했다. 그러나 염증은 금세 재발해 이식한 피부까지 썩기 시작했다. 재수술이 필요했지만 치료비가 막막했다. 더 이상의 대출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가족에게도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연락을 잠시 끊고 산속의 쓰러져가는 농막으로 거처를 옮겼다. 항생제로 버티다가 2020년 3월에 한계가 왔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응급 수술을 받았다. “두 번째 수술 효과도 오래가진 못했어요. 낙심의 연속이었죠. 성형외과 진료를 기다리면서 보니 나같이 변형된 얼굴의 환자는 없더라고요. 그때 딱 한 명만 보였어도 덜 위축됐을 텐데….” 성형 씨조차 포기하고 있을 때 성형외과 최종우 교수는 치료 방법을 부지런히 찾고 있었다. “괴사한 뼈와 살을 잘라내고 인공 뼈, 팔목의 살과 혈관을 잇는 수술을 해볼 겁니다.” 피부만 이식했던 두 번의 수술보다 적극적인 조치였다. 망설이며 진료실을 나서는데 최 교수가 대뜸 팔꿈치를 내밀었다. “우리 파이팅 할까요?” 코로나19 사태를 의식해 손 대신 팔꿈치를 부딪쳤다. 낯선 인사를 나누며 평생 혼자였던 성형 씨는 깨달았다. 파이팅은 같은 편이 있을 때 가능한 구호였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삶에 집착하는 것조차 내게 사치가 아닐까?’ 고민의 시소가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 “파이팅”하는 최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레 포기하고 숨기만 했던 삶을 일으켜 세운 한마디였다. 날이 밝는 대로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 인생의 희망사다리

사회복지팀 앞에서도 한참 서성였다. ‘이 큰 병원에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을까?’ 불분명한 발음으로 해야 할 이야기가 길었다. 사회복지팀의 신현수 선생은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후련했다. 그런데 수술 날 아침까지 연락이 없었다. ‘그래, 환갑이 다된 환자가 염치도 없이….’ 씁쓸한 마음을 접고 수술을 준비했다. 그때였다. “지원이 결정됐습니다. 수술비로 쓰고 남은 금액은 앞으로의 치료에 쓰실 수 있습니다.”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비인후과 김지희 교수와 성형외과 최종우 교수가 수술을 맡아 주었다. 그 외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의료진이 바쁘게 움직였다. 세 번째 수술 결과는 이전과 달랐다. “나중에 들으니 염증을 샅샅이 긁어내셨대요. 살 썩는 냄새가 많이 났을 텐데 참고 수술해 준 분들께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생면부지의 저에게 치료비를 지원해주신 분들도요. 서울아산병원은 제 인생의 마지막 희망사다리였어요.”
수술 부위가 안정적으로 아물면서 최 교수는 남은 흉터까지 덮어주고 싶어 했다. 성형 씨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부턴 더 예뻐지기 위한 치료잖아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성형 씨는 마스크를 잠시 내렸다. 남들과 조금 다른 얼굴이지만 행복한 표정이 말갛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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