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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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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가족 저자 : 홍누리

두 번째 가족

 

다시 나타난 고통
‘왜 하필 나야?’ 김종권 씨는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내내 울었다. 간암이었다. 그날 밤 아내와 두 자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한집에 사는 노부모에겐 차마 알릴 수 없었다. 치료도 혼자 해볼테니 신경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번 해봤으니까 괜찮을 거야.” 10년 전 대장암 완치 후 두 번째 암이었다. “아픈 게 아빠 죄는 아니잖아?” 고등학생인 딸의 울먹이는 소리에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 예전 대장암 수술을 받던 날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내내 울고 아버지는 아들의 암을 인정하기 싫은 듯 병원에 오지 않았다. 표현은 달랐지만 두 분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죄는 아니어도 불효라고 느껴졌다. 다시 일어서겠다는 일념으로 대장암을 이겨냈다. 그 후로 독하게 술과 담배를 끊고 식단을 조절하며 주말마다 산에 다녔다.

10년이 지나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는 소화불량과 구토가 시작됐다. 병원 3곳을 다녔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했다. 암에 대한 불안을 떨치기 어려웠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들른 곳이 서울아산병원이었다. 간암을 판정받았다. 그리고 열두 번의 지독한 항암이 시작되었다.

아픔은 슬픔으로 번지고
“어머, 혼자 오셨어요?” 간호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온 항암 환자는 종권 씨뿐인 듯 했다. 암병원주사실에 들어설 때까진 아무렇지 않았는데 침대에 눕자 예전 경험이 되살아났다. 길고 힘겨운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되세요?” “조금….” “한번 해보셨으니 잘 아시겠네요?” “네. 그래서 이번엔 혼자 해보려고요.” “대단하시다~ 힘들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이어지는 이야기에 긴장과 불안은 잊혀졌다.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간호사 덕분이었다. 주사실을 나서며 미처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한 채 이름만 기억해두었다. 안지영 간호사였다.

그는 건설회사에서 공사 수주를 유치하는 팀에서 일했다. 당장 일을 놓긴 어려웠다. 항암제를 꽂은 채로 출근했다. 다 맞으면 병원에 와서 빼고 일주일 쉬었다가 다시 항암제를 맞는 과정을 반복했다. 속은 메슥거리고 혈관통이 계속됐다. 머리카락은 한 움큼씩 빠졌고 손과 발이 새까맣게 죽어가고 있었다. 부모님이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결국 아내가 털어놓았는지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꺽꺽 우는 소리만 한참 들렸다. “아가, 그동안 얼마나 아팠니….” 어머니의 한마디에 회사 비상구 계단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또 어머니를 울게 만든 못난 아들이 되었다.

가족 같은 101병동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악착같이 버텼다. 항암 후 김기훈 교수는 수술로 치료할 수 있겠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101병동에 혼자 입원하던 날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소개받았다. 간호사가 환자의 간호와 간병을 책임지는 제도였다. 종권 씨의 일정과 상태는 문자로 실시간 아내에게 전달됐다. 멀리 있어도 남편의 소식을 꼼꼼히 알 수 있어 아내는 안심했다. 어느 날 종권 씨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아내의 전화를 받기 어려웠다. 반복되는 부재중 전화에 아내의 걱정이 눈에 선했다. 콜을 눌렀다. “선생님, 제가 아파서 아내 전화를 못 받을 거 같은데….” “제가 바로 전화할게요. 편히 쉬세요.”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간호사들은 항상 가족처럼 돌봐주었다. 가족들도 병동에 직접 전화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곤 했다.

그러고 보면 101병동은 10년 전 병동 풍경과 달랐다. 간호에 지쳐가는 보호자, 점점 의존적으로 변하는 환자의 모습은 없었다. 병실은 쾌적했고 환자들은 스스로 해내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간호사들은 항상 파이팅이 넘쳤다. ‘101병동에 입원하길 정말 잘했어!’라는 생각이 스쳤다. 두 번째 경험이기에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수술 예정 시간이 오전 8시에서 12시, 오후 4시로 자꾸 미뤄졌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더 초조했다. “수술은 잘 되겠죠?” 김기훈 교수에게 물었다. “걱정하지 말고 푹 자고 나오세요. 깨면 다 끝나 있을 겁니다.” 덤덤한 말투지만 확신을 담은 대답이었다. ‘그래, 앞서 걱정하지 말자. 교수님께 믿고 맡기자!’ 간 20%를 절제하는 수술은 잠든 사이에 모두 끝나 있었다. 3주 후엔 간 50%를 떼어내는 2차 수술이 진행됐다. “여보, 교수님이 암세포는 다 떼서 이제 깨끗하대요! 부모님께 전화했더니 너무 좋아하셔.” 아내의 손을 잡았다. 거칠어진 손이지만 참 따뜻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날 밤 회사에서 일하는 꿈을 꾸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가득했다. 열이 있었지만 병실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등 뒤에서 허리춤을 잡았다. “김종권 님, 수술 다음 날부터 걷는 거 보니까 금방 퇴원하시겠네요!” 친근한 목소리는 병동 간호사였다. 나를 지지해주고 용기를 주는 의료진이 있으니 치료 과정이 훨씬 수월했다.

“이제껏 제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고 살았어요.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도 혼자 이겨낼 거라 자신했죠. 그런데 세상은 더불어 돌아간다는 걸 제 나이 오십에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두 번째 가족이 되어준 서울아산병원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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