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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건강이야기
106병동의 우렁 각시 저자 : 윤정화

오지랖 넓은 정우석군이 환자들을 위해 식판을 나르고 있는 모습

 

오지랖 넓은 소년
3월 초, 신관 106병동에 우렁 각시 같은 소년이 나타났다. 소년은 식사 때마다 환자들이 먹은 식판을 급식차에 날라다 놓았다. 밤에 환자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살포시 전등을 끄는 것도 소년의 일이었다. 한 두 번 하고 지칠 법도 한데 소년의 행동은 퇴원 때까지 계속됐다. 한편, 간호사 누나들을 보면 항상 씨~익 하고 미소를 날렸다. 오지랖이 열 두 폭인 이 소년은 정종우 교수(이비인후과)께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정우석 군(만 14세). 제 때 학교에 들어갔다면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나이다. 현재 우석이의 언어 수준은 만 4세 정도 밖에 안 된다.

 

기적처럼 찾아온 행운
엄마, 아빠, 우석이, 그리고 여동생. 우석이네 가족은 태안 바닷가에 산다. 우석이는 두 돌이 돼 갈 무렵까지 엄마가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당시 서산의 큰 병원을 찾았더니 청력이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엄마가 짐작하는 것은 생후 5개월 때 40도가 넘는 고열로 응급실을 찾았던 기억뿐이다.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다행히 한글을 빨리 깨친 덕에 글씨로 의사소통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러다 여덟 살이 되던 해 인공와우 수술 이야기를 들었다. 우석이 아버지는 고기 잡는 어부다. 봄부터 가을까지 바다에서 살다시피 한다. 그는 열심히 고기를 잡았다. 그가 잡은 우럭 한 마리, 농어 한 마리가 남매의 공책 값이 되고 연필 값이 돼주었다. 거기까지였다. 당시 보험처리가 되지 않아 수술비는 약 3천 만 원,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돈이었다. 그러나 간절히 원하니 길이 열렸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을 받아 왼쪽 귀에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소리, ‘엄마’, ‘아빠’
인공 와우 수술을 하면서 엄마, 아빠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이제 엄마, 아빠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서다. 하지만 수술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귀가 트이는 것이 아니었다. 초기엔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한꺼번에 기계음처럼 들리게 된다. 매핑이라는 과정을 통해 귀에 편한 소리를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소리를 경험해본 적 없는 소년에게는 모든 것이 더디기만 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우석이는 길거리에 누워 왼쪽 귀를 뜯으며 떼를 쓰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손을 꼭 잡고 찬찬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대신해 줄 수만 있다면 대신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므로, 겪을 만큼 겪어야 지나가는 아픔이므로. 그렇게 1년이 흐르고 2005년 12월, 어머니는 드디어 ‘그 말’을 듣는다. “무심결에 날 보더니 ‘엄마’, ‘엄마’ 두 번 하는 거예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더라구요.” 그 날을 기억하며 어머니는 필자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10년을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고서야 들은 ‘엄마’ 소리.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알아야 한다. 아이들의 웃음 묻은 ‘엄마’ 소리가 누구에게나 평범한 것은 아님을.

 

오빠의 수호천사, ‘해’
우석이의 두 살 아래 여동생 이름은 ‘해’다. 이름처럼 오빠를 환하게 밝혀주는 여동생이다. 그런데 오빠를 챙기는 수준이 ‘귀여운 조폭’ 같다. 우석이는 첫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후 여동생과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말 못하는 두살 위 오빠가 한 학년에 다닌다는 것이 어린 나이에 창피할 법도 한데 해는 오빠를 극진하게 ‘모시고’ 다녔다. 오빠를 놀리거나 괴롭히는 친구가 있으면 여동생한테 치도곤을 당하곤 했다. 엄마가 알고 속상할 일이 있으면 그것도 알아서 정리했다.
혼자 선생님을 찾아뵙는다거나, 친구 어머니를 만난다거나.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우석이가 책읽기를 좋아해서 학교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여러 권씩 빌렸어요. 매일 그러니까 도서관에 온 엄마들이 좀 싫은 내색을 했나 봐요. 그랬더니 해가 엄마들에게 가서 울면서 말하더래요. 아줌마들이 그러면 우리 오빠는 설 자리가 없다고, 오빠 앞에서 절대 그런 내색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구요. 그 다음부터 우석이가 책을 아무리 많이 빌려도 엄마들이 다 들어줬대요. 학년 끝날 때 다른 엄마들이 얘기해줘서 알았어요.” 친구들에게 큰 소리를 치기 위해서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야 했다. 우석이가 필자 앞에 보란 듯이 동생 상장들을 펼쳐 보인다. 공부, 운동, 글짓기, 그림그리기… 못하는 것이 없었다.

 

오누이는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남중, 여중으로 갈라졌다. 엄마에겐 당연히 근심이 늘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였다. 해는 매일 초등학교 남자 동창들에게 전화를 한다. 오늘 오빠에게 말 걸어줬는지, 잘 놀아줬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괴롭힌 친구가 없는지도 빠트리지 않고 물어본다. 필자가 물었다. “괴롭힌 친구 있다고 하면 어떡할 건데요?”
“학교에 가봐야죠.” 옆에서 우석이가 빙그레 웃는다. 엄마도 따라 웃는다.

 

사랑의 도돌이표
인공 와우 수술을 받으면 언어 치료를 함께 받아야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한창 언어치료를 받아야 할 때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터졌다. 바다가 생활 터전인 우석이네 가족에게 검은 바다는 재앙이었다. 통장에 잔고가 350원 밖에 없고, 옆집에 쌀을 빌려야 했던 시절. 사는 게 전쟁이었던 그 때, 우석이의 언어치료는 자꾸만 뒤로 미뤄졌다. 수술을 늦게 한 것도, 언어치료를 제때 못 받은 것도 다 부모가 부족해서 자식을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지난 해 말 우리 병원 특화사업인 인공 와우 수술 지원 이야기를 듣게 됐다.

 

지역 사회가 추천해 주었고 우석이의 나머지 오른쪽 귀도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우석이 부모는 모든 것이 꿈만 같다고 한다. 엄마는 우석이에게 매월 말 은행 심부름을 시킨다. 복지관에 매달 후원금 5천 원을 보내기 위해서다. 엄마는 방송통신고등학교 공부도 시작했다. 간호사 자격증을 따서 사회복지시설에 봉사를 하기 위해서란다. 가진 것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자신들에게 희망을 나눠준 사람들에게 은혜를 갖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우리 병원 인공 와우 특화사업으로 소리를 다시 듣게 된 사람은 우석이를 포함해 모두 8명이다. 우리가 나눠주는 것은 누군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다. 누군가를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위로’다. 그래서 우리는 ‘나눔’이라 적고, ‘사랑’이라 읽는지도 모르겠다.

 

                                                                                                      Storytelling Writer 윤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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