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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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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의 착한 휴가 저자 : 윤정화

울지마 톤즈의 포스터

영화 <울지마, 톤즈>와 한 장의 메모
필자의 사무실에는 영화 포스터가 한 장 붙어있다. 주인공의 외모는 물론 아주 준수하다. 게다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다큐 영화 <울지마, 톤즈> 포스터다. 필자는 지난해 이 영화 제작에 작가로 참여했다.
주인공 이태석 신부는 의대를 졸업한 후 다시 사제가 되어 세상의 가장 가난한 곳으로 떠났다. 20년 넘는 내전으로 절망의 황무지가 된 수단 남부였다. 그곳에서 그는 진심을 다하는 의사였고, 사랑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신부는 작년 1월 대장암으로 선종했다.

 

<울지마, 톤즈>는 극장판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인 작년 4월, 에서 먼저 방송됐다.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한 남자의 생애를 이야기로 만들고 글을 쓰던 그때, 방송작가 생활 20년 동안 흘린 눈물을 모두 모은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 기억이 난다. 그 작업을 모두 끝내고 더빙까지 마쳤을 때 문득 떠오른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 병원 가정의학과 선우성 교수의 딸(당시 고3)이다. 얼굴도 본 적 없지만, 필자는 방송 DVD를 챙겨 짧은 메모와 함께 그녀에게 전해달라고 선우성 교수께 부탁했다. 메모에는 이렇게 썼던 것 같다. “얼굴도 모르지만,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파이팅~”

 

아버지와 딸이 함께 떠난 휴가
작년 3월, 필자는 선우성 교수를 처음 만났다. 한 달 전 캄보디아에 의료봉사를 다녀온 AMC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선우성 교수는 겉모습과 달리(?)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목에 혹이 달린 남자를 수술하기 위해 칼을 잡은 얘기, 장이 파열돼 패혈증에 걸릴 수도 있는 위급했던 청년 얘기, 말기암 환자에게 해줄 것이 없어 기도해주고 돌려보낸 얘기, 안과 차흥원 교수가 선풍기 밖에 없는 곳에서 하루 종일 허리 한번 못 펴고 수술했단 얘기, 간호사들 고생한 얘기…. 자신은 조금 베풀어주었을 뿐인데 현지인들은 정말 고마워한다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그 고마움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늘 본인이 더 많은 것을 받고 돌아온다고 했다.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려는데 벽에 걸린 대형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아빠, 딸 셋이 찍은 사진이다. “따님이신가 봐요?” “우리 딸 윤이도 올해로 다섯 번째 다녀왔어요. 저보다 우리 딸에게 더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죠. 꿈이 바뀌었거든요.”

 

엄마, 아빠가 모두 의사인 윤이의 어릴 적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아빠는 내심 하나밖에 없는 딸이 의사가 되길 원했단다. 하지만 아빠의 속내를 이야기하면 강요하는 것 같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촌스런 아빠가 될까봐 잠자코 있었단다. 그런데 의료봉사를 따라다니던 딸이 고1이 되면서 불쑥 의대를 가고 싶다고 한 것이다. 기도를 하는데 자꾸만 캄보디아 아이들 눈빛이 떠오른다고, 의사가 되어 가난한 나라에 가서 의료선교를 하고 싶다고 말하더란다. 선우성 교수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세련된 방법으로 바람을 이뤘다며 흐뭇해했다. 필자는 그 흐뭇함이 왠지 낯설었다. “어려운 의대공부를 마치고 가난한 나라로 간다는데 그래도 좋으세요? ” “그럼요. 그냥 의사도 아니고 좋은 일 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데 응원해줘야죠.” 엄마는 생각이 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부부는 전적으로 딸 편이예요.” 아무리 부모 자식 지간이라고 해도 자식을 100% 신뢰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부모가 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리고 일 년 후. 필자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가 서울의대에 당당히 합격했다고 했다.

 

그녀를 만나다
입학을 기다리는 신입생은 참 바빴다. 오라는 데도 많고 가야할 데는 더 많은 선우윤(19)을 저녁 8시, 강남의 한 도넛 집에서 만났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면 무슨 말로 상대의 마음을 열까 고민하며 기싸움을 준비하는데, 이날은 필자가 먼저 무장해제 됐다. 만나자마자 윤이의 첫 마디, “안녕하세요, 작가님이 써준 메모 제가 일 년 동안 책상 앞에 붙여놓고 공부 했잖아요~ 감사해요.”

 

아휴 예쁘기도 하지. 윤이는 의료봉사단 약국에서 처방 나온 약 나누는 일을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숙련된 인력이라며 기분 좋게 웃는다. 그녀가 AMC 가족들의 의료봉사를 지켜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마지막 날 환자들이 구름같이 많아요. 그날 진료 못 받으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마지막 환자 한명 까지 돌려보내지 않고 늦게까지 다 봐요. 8백 명도 넘을 거예요. 진료실, 약국, 다 전쟁터죠. 그래도 아무도 힘들다고 하지 않아요. 열정, 헌신, 그런 거 정말 멋있어요.” 집에서는 늦은 귀가 때문에 얼굴 보기도 힘든 아빠의 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기쁜 일 중에 하나였다. 땀 뻘뻘 흘리며 환자를 보는 아빠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던 것이다.

 

꿈꾸는 열아홉 살
일 년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을 그녀에게 했다. “어려운 의대공부 마치면 정말 가난한 나라로 갈 거예요?” “네.” “정말?” “자꾸 생각이 나요. 그곳에 가서 저는 하나도 안 힘들어요. 체질인 거 같아요. 하하.” 빈 말이 아니다. 그녀가 들려준 꿈은 매우 구체적이다. 소아과 의사가 되어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단체에 지원해 제3세계 어린이를 돌보고 싶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면역학이나 보건학 공부를 더 해서 국제기구에서 더 많은 세계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단다. “엄마, 아빠가 정말 보내주실까요?” “ 무한신뢰와 방목이 우리 가족 컨셉이에요. 하하. ”

 

아산 가족들의 의료봉사 경비는 일부 지원을 받긴 하지만, 자비 부담이 원칙이고 1년 동안 모아둔 금쪽같은 휴가도 써야한다. 그야말로 착한 휴가다. 아빠와 딸은 올해 1월, 여섯 번째 착한 휴가를 함께 다녀왔다. 아빠는 딸에게 세상 살면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몸으로 보여주었고, 딸은 자신이 평생 가야할 길을 발견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착한 휴가가 또 있을까! 윤이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만약에 아빠 따라 의료봉사 안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 잠시 고민하던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음… 약국이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하하하.”

 

                                                                                                           Storytelling Writer 윤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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