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4시 경, 창 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자 어두컴컴했던 실내가 갑자기 밝아졌다. 죽어가던 그의 얼굴이 번쩍 들리며 주먹을 쥔 오른손이 장엄하게 하늘을 향했다. 마치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처럼 뻗었던 그 팔은 곧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는 영영 눈을 감았다.....
1827년 3월 26일, 56세의 베토벤은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 위대한 음악가는 20대 초반부터 복통에 시달렸고, 31세에 청각장애가 나타나 42세 때에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오랜 투병 과정에서 친절하고 매력적이었던 젊은이는 신경질적으로 변했으며 만년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우울한 인물이 되어있었다. 생애의 마지막 해인 1827년 초, 베토벤은 폐렴을 앓았고 그 얼마 후에는 복통이 심해지면서 복수가 차올랐다. 의사들이 간과 콩팥 등에서 다량의 체액을 뽑아냈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의 직접사인은 간경화증에 의한 간부전이었다. 전기 작가들이 묘사한 장면-임종을 맞은 베토벤이 하늘을 향해 주먹을 흔드는 장면-은 베토벤이 간성혼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간이 나빠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갑작스런 (강한 빛과 같은) 자극을 주면 이런 경련성 반응이 유발되는 것이다. 베토벤의 간경화는, 빈 의과대학의 요한 바그너와 카를로키탄스키에 의해 부검에서 확인되었다.
현대의 의사들은 생전의 병력과 부검소견을 근거로 베토벤이 ‘전신성홍반성결절’이라는 면역질환을 앓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왔다. 젊어서 발병하는 이 병은 복통을 포함한 다양한 증상을 보이며 만성간염과 간경화가 나타날 수 있다. 청각장애도 청신경으로 가는 동맥에 염증을 동반할 수 있는 이 병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미국베토벤협회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정상인의 100배에 이르는 납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머리카락은 한 유태계 독일 소년이 베토벤이 죽은 다음 날 몰래 잘라 기념으로 간직했던 것이었다. (이소년은 커서 지휘자 겸 음악교사가 되었다. 1943년 그의 손자가 나치스 독일을 탈출하는데 도움을 준 한 덴마크 의사에게 이 머리카락 다발을 선사했고, 이 의사의 후손이 1994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 내놓은 것을 협회가 7,300달러에 사들였다고 한다.)
한편 베토벤 사망 당시 빈 대학에서 의학사를 담당하던 로메오셀리그만도 베토벤의 두개골의 일부를 몰래 떼어내 보관했다. 이 두 개의 뼈조각들은 1993년 미국캘리포니아의 산호세주립대학에 기증되었는데, 2005년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여기에서도 다량의 납이 검출되었다.
이로써 생전에 베토벤을 가장 오래 괴롭혔던 복통이 납중독에 의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가 때때로 어린 아이처럼 신경질을 내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도 납중독에 따른 신경계의 장애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졌다. 연구자들은 당시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던 다뉴브 강에서 잡힌 물고기나, 애주가였던 그가 수십 년간 마셨던 와인에 납이 들어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번 연구로 베토벤이 매독에 걸렸었다는 일부 학자들의 가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 그의 머리카락과 뼈에서 당시의 매독 치료제였던 수은이 거의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약물의 흔적도 없는 것으로 보아 베토벤은 아편과 같은 진통제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그는 맑은 정신으로 작곡을 하기 위해 끝까지 극심한 고통을 참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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